워싱턴 어빙의 립 밴 윙클(Rip Van Winkle)입니다. (번역서, 원서, 문장별 영한대역 포함)
워싱턴 어빙은 디드리히 니커보커라는 필명으로 이 작품을 발표했습니다.
이 작품에서 립 뱅 윙클은 어떤 성격의 사람이었을까요? 그의 아내는 그를 어떻게 대했을까요?
마을 사람들은 그를 어떻게 대했을까요?
그는 왜 산으로 들어갔고 산에서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산에서 내려온 그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요? 산에 들어가기 전과 후의 삶 중에 그는 어떤 삶을 더 만족해했을까요?
확인해보세요.
워싱턴 어빙(Washington Irving, 1789년~1859년)
유복한 뉴욕 상인 가족의 11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워싱턴 어빙은 벤저민 프랭클린과 너새니얼 호손처럼 문화적·외교적 대사로 유럽에 파견되었다. 일련의 우연적인 사건이 글쓰기를 직업으로 택하도록 강요하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그는 자신의 재능에도 불구하고 작가에 대한 경제적 보상의 부족으로 인해 전업 작가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는 친구들을 통해 《스케치북(Sketch Book)》(1819~1820)을 영국과 미국에서 동시에 출간할 수 있었으며, 양국에서 저작권과 인세를 얻어낼 수 있었다.
어빙이 제프리 크레이온이라는 가명으로 낸 《스케치북》에는 가장 기억에 남는 〈립 반 윙클(Rip Van Winkle)〉과 〈슬리피 할로의 전설(The Legend of Sleepy Hollow)〉이 수록되어 있다. '스케치'란 표현은 어빙의 섬세하고 우아하지만 동시에 격식이 없는 듯한 스타일을 전달하고 있으며, 가명 '크레이온(크레용)'은 풍부하고 미묘한 톤과 정서적인 효과를 채색하고 창조하는 그의 능력을 나타낸다. 《스케치북》에서 어빙은 뉴욕 북부 허드슨 강을 따라 펼쳐진 캐츠킬 산맥을 우화적이고 마술적인 공간으로 다루었다.
그가 독일 자료에서 소재를 채택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 독자들은 어빙이 상상한 캐츠킬 산맥의 '역사'를 고맙게 받아들였다. 어빙은 초기 물질적인 시대에 정말로 필요했던, 신세계와 관련된 상상력을 제공해주었다.
미국 땅을 의인화하여 이름과 얼굴, 그리고 전설을 부여하는 데 어빙만큼 성공한 사람은 없었다. 20년 동안 잠을 자다가 깨어보니 식민지가 이미 독립했다는 '립 반 윙클'의 이야기는 민간 설화가 되어버렸다. 이 작품은 연극으로 각색되었고 구전 전통에 스며들어 수 세대에 걸친 미국인들에게 진짜 미국의 전설인 것처럼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어빙은 갓 태어난 신생국의 역사의식을 발견해냈고 이를 만족시키는 데 도움을 주었다. 그의 수많은 작품들은, 역사를 재구성하고 그 역사에 살아 숨쉬는 상상의 생명력을 불어넣음으로써 신생국의 정신을 구축하려는 헌신적인 노력의 결과물로 파악할 수 있다. 그는 작품 소재로 미국 역사의 가장 극적인 장면, 즉 신세계의 발견, 국가의 영웅인 첫 번째 대통령, 서부 탐험 등을 선택했다. 그의 처녀작은 재치가 번득이는 풍자 작품 《뉴욕의 역사(History of New York)》(1809)인데, 이 작품은 디드리히 니커보커라는 필명으로 발표했다. (이 때문에 그 당시 어빙의 친구들과 뉴욕 작가들은 '니커보커 학파'로 불리게 되었다.)